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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ㅡ「서시」의 앞부분
윤동주 이전에 이토록 자기의 전 존재를 던져서 사람의 삶이 업보처럼 지니게 마련인 근원적인 부끄럼과 마주선 존재가 없었다. 우리는 무수한 세대를 기다려서야 드디어 이 구절을 얻은 것이다.
이 구절에 이르면 우리는 드디어 깨닫게 된다. ‘부끄럼’이란 것은 인간이 지닌 일상적인 정서의 하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실존 그 자체에 관한 성찰의 한 양식이라는 것을, 그렇다! ‘부끄럼’이란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이 그들의 불완전함을 슬퍼하는 참회의 방식에 다름 아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이 정직하게 부끄럼에 마주서자면 그의 전 존재, 그의 전 중량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서본 경험이 없는 한 이토록 가슴을 치는 절창은 솟아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둠이 짙어갈수록 빛을 갈구하게 되고 혼탁한 곳에 있을수록 더욱 맑음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 걸 생각하면, 당시 윤동주가 ‘꾸깃하게 우그러진 모자’를 그리도 싫어했던 심리를 납득하게 된다. 그가 자신이 처한 일그러진 위상에 대한 자의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꾸깃하게 우그러진 모자’조차 그렇게 싫어했을까. ‘반듯하다’ 하여 자신의 평소 성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남의 물건을 진심으로 탐내도록까지, 그는 반듯한 모습, 흠이 없는 모습, 당당한 모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갈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실패와 그 수치 앞에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섰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시험에 실패한 게 유감스럽긴 하지만, 이렇게 해서 큰 액땜을 한 걸로 쳐야지’ 라든가.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론 실수할 때도 있는거지, 긴 인생을 사는 데 있어 한 번 실패 정도야 병가지상사가 아닌가’ 하는 식의 얼버무려 스스로를 위로하며 슬쩍넘어갈 수 있었으면 그는 그토록 고통스럽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러지를 않았다. 수치 앞에서 정직했고 성실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다는 건 아마도 그가 청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것은 신의 축복이다. 청결한 마음이란 것은 아무에게나 허용된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타고나야 소유할 수 있는 천품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에 의하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한다. 그가 자신의 수치를 직시하는 그 자리에 나아가 섰을 때 그의 청결한 눈이 본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지닌 불완전성이었다. 그렇다. 그곳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끝없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불완전성, 그 도저히 어지할 수 없는 불완전성을 꿰뚫어 본 것이다. 멀리 희미하게 알아본 것이 아니라, 대낮에 서로 얼굴과 얼굴의 마주 대한 듯이 분명하게 알아본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인식의 연옥을 거친 영혼이 아니라면 뒷날에 그가 토해난 저 깊은 탄식,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라는 울림은 도저히 울려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울림이야말로 우리 인간 모두를 이끌어 신의 완전성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전진시키는 무서운 울림인 것이다. 우리는 이 시구를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저 준열한 그리스도의 요구 앞에서 그저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남김없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토록 절실하게 인간의 불완전성을 괴로워하게 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신의 그 완전성을 참으로 밝히 알아보게 될 것이다.
신의 속성이 완전성이라면,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성을 알아보는 것이 곧 신의 완전성을 알아보는 것이라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성서의 약속은 마침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날
사이좋은 정문(正門)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五色旗)와 태양기(太陽旗)가 춤을 추는 날.
금을 그은 지역(地域)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아이들에게 하로의 건조(乾燥)한 학과(學課)로
해말간 권태(倦怠)가 깃들고
‘모순(矛盾)’ 두 자를 이해(理解)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單純)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 버린 완고(頑固)하던 형(兄)을
부르고 싶다.
(1936.6.10.)
“솥에서 뛰어 숯불에 내려앉은 격”의 광명중학 시절, 윤동주는 이 시절을 어떻게 지냈는가. 윤동주가 숭실에서 광명으로 옮긴 지 두 달 만에 쓴 시.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은 그의 광명 중학교 교문 기둥이다. 그 돌기둥 끝에서 만주제국 국기인 ‘오색기’와 일본제국의 국기인 ‘태양기’가 춤을 추고 있다. 침략자들의 축제일인 것이다. 그런데 그 피해자, 한인인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 역시 ‘즐거워’하고 있음을 그는 괴로워 한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두고 “‘모순’ 두 자를 이해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하였구나”라고 탄식하는 동시에 “이런 날에는 잃어 버린 완고(頑固)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는 뼈 있는 울분을 토로하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을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이 시는 ‘숯불에 내려앉은’ 윤동주의 울분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울분이 과연 시의 문맥대로 ‘즐거워하는 아이들’만을 향한 것이었을까. 그 자신을 향한 부분은 없었을까.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숭실중학교를 자퇴했으나 광명중학, 일본 국기 아래서 단순하게 즐거워하고 있는 곳, 그 안에 제발로 들어와 있는 처지였다. 그야말로 ‘모순’된 일이었다. 그 자신의 이런 ‘모순’은 너무도 쓰라려서 그는 차마 겉으로 내색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다만 ‘이런 날에는 잃어 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라는 아픈 결구로서 그 자신의 고뇌를 형상화한 것이다.
참회록(懺悔錄)
파란 녹이 긴 구리거울속에
내얼골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ㅡ만(萬)이십(二十)사(四)년(年)일(一)개월(個月)을
무순 깃븜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ㅡ그때 그 젊은 나이에
웨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거러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1942.1.24.)
이 시는 오랫동안 ‘역사의식이 내포된 자기성찰의 시’라는 정도의 일반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참회’라는 표현을 다소 과장된 감정으로 보는 시각조차 있었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 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현실에 의거하고 있는 강력한 저항시가 바로 이 시이다. 일제가 강요하는 일본식 창씨개명이란 절차에 굴복한 그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그는 일제에 의해 망한 ‘대한제국’이란 왕조의 후예로서, 바로 자신의 ‘얼골’이 그 ‘왕조의 유물’임을 절감하면서 ‘이다지도 욕됨’을 참회한 것이다. 그 욕됨이 어찌나 참담했던지,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만24년 1개월’에 달하는 그의 생에 전체가 지닌 의미 자체를 회의했다. 그는 1917년 12월 생이므로 1942년 1월 현재 ‘만24세 1개월’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참회’는 이처럼 전인적(全人的)이었다. 그러나 그의 참회가 지닌 참된 의미는 그런 욕됨을 직시하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그것은 동시에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을 기약하는 강한 자기다짐의 참회이기도 했다.
위에 쓴 글들은 송우혜 작가님의 윤동주 평전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사실 윤동주 시인의 시만 알고,
그의 색
그의 환경
그의 모습
그의 생각
그의 시에 담겨진 생각과 삶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알아야 한다.
역사의 내용을
역사 속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갔는 지를
바르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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